'다단계 방문판매업 폐해' 입체해부 제1탄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들
'다단계 방문판매업 폐해' 입체해부 <제1탄>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들
발을 들였다간 여간해선 빠져 나오지 못하는 다단계 영업. 피라미드 방식으로 운영되는 다단계 또는 방문판매의 폐해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고단한 삶을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헤매다 다단계·방문판매 업체에 가입, 돈을 한순간 날려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할 정도다. 다단계 영업의 위험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 블랙홀에 갇힌 사람들의 비명은 그칠 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호소하는 눈물은 거대한 장막 뒤에 가려져 점점 죽어가는 듯 희미해져만 간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이 줄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그곳을 비추던 조명이 꺼져간다는 얘기다.
지금도 어디선가 신음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더 이상의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다단계·방문판매의 병폐를 알리고자 해당 업체들의 특성과 보이지 않는 문제점 등을 연속 기획으로 들춰보기로 했다.
현재 국내에는 1백50개 정도의 다단계업체가 있다. 무등록 업체와 방문판매 업체까지 더하면 그 수는 2배 이상 늘어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업체는 감소 추세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폐업을 위장하고 회사명만 교체하는 등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기생하는 것이 피라미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의 꿈’
말로는 ‘비극’
다단계 및 방문판매는 ‘일확천금’을 미끼로 던지기 마련. 여기에 공식처럼 따라다니는 게 바로 ‘비극’이라는 현실이다.
최근 제주에서는 다단계판매에 나섰던 부부가 싸움 끝에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부는 1년 여 전부터 다단계 제품을 판매하며 은행과 개인 등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빚을 지게 됐고, 이후 금전문제 등으로 매일같이 부부싸움을 했다. 결국 부부는 모 여관 지하실에서 끈으로 목이 졸린 채 숨지는 참극이 연출했다.
다단계 사기는 그 피해액이 수십억에서 수천억을 뛰어넘는다. 지난달 발생한 수천억대 다단계 사기 사건은 이같은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달 다단계업체 B사 대표 정모씨 등 2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임직원 11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40명을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2004년 4월쯤 B사를 차린 뒤 “독일 발효음료회사와 제휴해 국내 제조공장을 건설 중이며 완공 후 수익사업을 통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최근까지 한모씨로부터 1억7천5백만원 등 판매원 1만1천여명에게서 3천7백90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챘다. 조사결과 B사는 판매원 모집 과정에서 독일산 빵 발효음료를 1박스(16병)당 7만4천원에 수입한 뒤 소화기능이나 아토피 등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과장해 판매원들에게 최고 1백50만원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이 다단계판매는 소비자 회원을 끌어모아 이들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돈만 챙기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대상도 주부, 대학생, 노인 등으로 확산추세에 있으며 온라인 판매 등 형태 또한 다양하다.
특히 대학생 등 젊은 사람들이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학업을 제쳐둔 채 신규회원 모집에 혈안인 모습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부 업체는 허위로 부모 동의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미성년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한 다단계업체에서 보름간 일했다는 박모(20)씨는 “여유있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3백만원어치 물품을 구입하고 친구들도 가입시켰지만 그만뒀을 때는 수백만원의 카드 빚만 남아 있었다”고 후회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무차별적인 다단계판매 공세 속에 인간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 특히 다단계로 인한 피해가 사회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YMCA 시민중계실 김희경 팀장은 “다단계판매는 주로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불법 다단계 판매의 경우 신용불량, 가정파탄, 자살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거나 사회 공동체성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단계판매가 국내에 유입, 소비자 피해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 부터. 한탕을 노리고 불법 피라미드 판매와 사기행각을 일삼았던 일부 업체로 인해 막대한 소비자 및 판매원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한 언론과 소비자단체 등의 우려가 확산되자 당시 상공부가 독자적으로 방문판매, 통신판매, 다단계판매를 포함한 방문판매법안을 만들기 시작, 1999년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어 1995년 개정 작업을 거쳐 1999년 2월 사업자에게 부담을 주는 각종 규제를 정비했다. 같은해 5월에는 주관부서를 산업자원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인관됐고, 공정위는 2002년 방문판매법을 개정했다.
불법 다단계업체들은 계약과 달리 내규나 보상플렌 등을 수시로 바꾸기 일쑤다. 또 상호를 변경하거나 폐업신고를 하는 등의 편법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회피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판매원들 몫으로 돌아가는 실정이다.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내에 설치된 자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사건은 총 8백64건. 이 중 다단계판매가 2백51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업권유거래 1백92건 △방문판매 1백67건 △전화권유판매 1백28건 △전자상거래 88건 등으로 나타났다. 또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다단계 판매 피해상담 건수는 2002년 4천6백59건에서 2003년 2천6백96건, 2004년 1천4백55건 등으로 조사됐다.
방판법 ‘있으나 마나’
전국판매원 3백70만명
그렇다면 불법 다단계에 사람들이 이처럼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빠른 시일 내에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손에 쥐는 수입은 기대 이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다단계판매 시장규모는 소폭 감소했지만 국내에서 다단계판매원으로 공식 등록 해 활동중인 사람은 3백70만명을 육박한다. 통계청이 파악한 전체 취업자(2005년 10월 기준)가 2천3백18만6천명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취업자의 16.3%가 다단계 판매원으로 활동중인 셈이다. 하지만 판매원의 1인당 연간 매출액은 50만4천9백10원, 월간 매출액은 4만2천75원에 그쳤다고 공정위는 전했다.
게다가 방판법 개정 이후 외국계 다단계 판매회사의 국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규제 완화로 사업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 실제로 국내 다단계판매 시장의 외국업체 점유율은 2005년 58.5%로 전년 대비 3.1%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일본계 다단계 판매회사들도 한국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단속과 규제가 심한 ‘다단계판매’로 허가받지 않고 ‘방문판매’로 신고한 뒤 사실상 다단계로 물건을 판매하는 ‘신방판 업체’가 늘고 있다. 방문판매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 영업은 다단계 판매로, 사실상 불법 영업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안티피라미드 관계자는 “신방판 업체가 양산되는 근본적 원인은 다단계판매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규제조항을 두고 있는 방판법이, 정작 방문판매에 대해서는 업체등록과 회원가입, 부담행위, 보상보험 등 상당부분을 판매업자의 자율에 맡겨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호소 할 법이나 기관이 전무하다는 사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판매형태로 인해 신방판의 판매원으로 가입한 소비자들은 사실상 다단계와 똑같은 피해를 겪고 있으나, 당국은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피해자들의 제보가 잇따르지만 현행 방판법 유사수신 조항이 애매모호해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더욱이 이를 감시해야하는 공정위 마저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공정위 민간자문역할을 했던 한 대학 교수가 3천7백억대 다단계 사기에 연루돼 입건되면서 공정위와 다단계업체의 유착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그는 평소 다단계 업체의 이익을 적극 대변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정위가 이 교수를 선정한 것 자체가 의혹이라는 지적이다. 해당 교수는 다단계 거래 소비자보호 정책수립에 참여하고 공정위 용역도 맡는 등 공정위 주관 행사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이같은 경력을 다단계 사업설명회에서 적극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단계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공정위가 다단계시장에서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제 밥그룻 챙기기’에만 열중한다”며 강력비판하고 있다. 다단계업체 마저도 “공정위가 하는 일 없이 상전 노릇만 하려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이택선 안티피라미드 사무국장은 “전직 고위공무원이 다단계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등 그동안 공정위와 업체의 유착의혹은 무수히 많았다”며 “공정위는 비현실적인 규제를 개선하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거액의 투자금을 가로채는 행위에 대해 유사수신행위로 처벌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정위 자문 사기 연루
“상전 노릇만 하려한다”
그러나 공정위는 현행 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방판법상 조항의 개정을 검토할 필요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불법 다단계업체에 대해 사실상 눈을 감고 있다는 평을 듣는 공정위. 공정위의 다단계 피해확산에 대한 대책이 ‘규제강화’인지, ‘규제완화’인지, 그것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없지 않다.
“사람 데려오는 만큼 수수료를…”
지하철 광고와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급속히 번져가고 있는 호주로또 사업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복권위원회에서 호주로또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수사를 의뢰받아 이 사건을 서울경찰청 수사과에 인계해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복권위원회는 “회원을 데려오면 수수료를 받고 그 회원이 다시 다른 회원을 모집해오면 자신에게 추가로 수수료가 들어오는 등 회원 모집 형태가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호주로또 사업이 회원을 모집해 오면 수수료를 지급하는 ‘다단계 판매방식’등 회원모집 방식에서 불법성이 높다고 판단, 이들의 회원 모집 형태가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는지 여부와 회원들의 피해 규모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호주 정부가 발행하는 호주로또는 해외 복권사이트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구매대금 결제와 당첨금 지급이 이뤄지고 있다. 사이트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르나 주 3회 추첨에 모두 참여하는데 1만~2만원씩 내도록 돼 있다. 1~45번 숫자 중 6개를 맞히는 방식은 국내와 동일하다.
그러나 호주로또와 관련한 한 국내사이트는 5명의 하위 회원을 모집할 경우 로또를 평생 공짜로 구매할 수 있으며 그 이상 회원을 모집하면 일정액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또 다단계 회원 모집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호주로또 사업자들은 “회원을 직접 데려올 때나 자신이 데려온 회원이 다른 회원을 가입시킬 때마다 1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데 이런 중개 수수료를 합하면 한달 수억원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당첨금보다는 회원모집을 통한 수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로또 다단계의 경우 일반 다단계조직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현행 방문판매법상 다단계조직은 직접판매공제조합(직판조합) 또는 특수판매공제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판조합 관계자는 “소비재나 내구재가 아닌 유가증권의 일종인 복권이라는 점에서 어떤 법 조항을 적용할지 확실치 않다”며 “복권 다단계 사례가 드물어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